뷰티칼럼

오래된 소중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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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97회 작성일 19-09-25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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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장 한 중간에는 색깔이 바래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수십 개의 메모장이 있다. 그 메모장에는 뷰티업계에 발을 디디면서 시작된, 나의 노력과 열정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 메모장을 꺼내볼 때마다 그 시절의 기억으로 가슴이 벅차 오른다. 닳아빠진 종이가 조금이라도 더 찢어질까 조심스레 만지작거리며 읽고 또 읽는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지금에도 그 메모는 항상 새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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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선 살롱 드 메이페어 대표

이처럼 오래된 물건에는 분명히 스토리가 흐르고 있다. 손 때가 묻은 것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물건에 얽힌 추억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떤 이들에게 단 한번이라도 선택된 모든 것들은, 남들이 알지 못하는 그들만의 감동스런 역사가 있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는 사람들은 예전에 쓰던 TV나 냉장고 같은 물건을 다 버리고, 새 가전제품들로 채워 넣는다. 깔끔하고 좋긴 하지만, 왠지 과거를 버리고 현재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것 같아 허전함을 감출 수가 없다.

요즘 유행에 뒤쳐져 입지 못하던 옷들, 손때 묻은 그릇들, USB나 실시간 음악을 제공하는 스트리밍으로 인해 이젠 더 이상 듣지도 못하는 음악 테이프, 장식장으로 사용하는 CD 플레이어 등을 만지거나 닦을 때 마다 과거를 회상하며 콧노래를 부른다. 남들에겐 철 지난 고물이나 골동품이겠지만, 나에겐 개인 애장품이자 값비싼 보물들이다.

새로움을 받아들이기 위해 옛 것을 버려야 한다지만 정작 마음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 걸 보면 나도 구세대일까. 하지만 우리는 무엇이 되었든 흘러간 시간의 무게만큼, 가치의 소중함이 낡은 무언가에 스며들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오래되고 낡은 것들은 조금만 다듬고 숨을 불어넣으면, 새로운 것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새로움은 화려함으로 무장되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지만 뭔가 따스함은 없다. 손때 묻은 낡은 것은 흐릿하고 무뚝뚝하긴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은근한 정이 있어 살가움으로 다가온다.

살다보면 마음 속 깊이 묻어뒀던 뭔가가 소리없이 나타나, 잠자던 감수성를 자극해 코끝을 시큰하게 하면서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오래되고 낡은 것들은 비록 자리를 차지하긴 하지만 눈물을 참으며 어딘가를 달려가고 있는 현실의 힘든 나를 조용히 감싸안으며 엄마의 품으로 돌아가게 한다.

현대인들은 강박적으로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만을 찾는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여유가 생긴다. 주위에 있는 오래된 낡은 것들로부터 삶의 위로와 마음의 평온을 가진다면 원인 모를 불면증으로부터 해소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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